남설희

그냥. 지인의 질문에 또 그냥이라고 말했다. 우리 앞으로 그냥이라고 말하면 500원씩 내기해요. 지인이 말했다. 그럼, 만 원 내고 시작하면 안 될까요?

말투뿐만이라 문장도 마찬가지였다. 지인과 나는 인터넷으로 매주 온라인으로 글 쓰는 모임을 한다. 서로 자신의 글을 가져와 합평하는데 게으른 나는 겨우 만들어 온다. 어디에도 내놓기 부끄러운 글이지만 지인과의 약속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한 줄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단어를 다 지워봐요. 지인이 말했다. 그냥이라는 단어는 애매해요.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왜 이 문장에 그냥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그냥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다. 부사 1.더 이상의 변화 없이 그 상태 그대로. ) 그냥 놔두다. 2. 그런 모양으로 줄곧. ) 하루 종일 그냥 울고만 있으면 어떻게 하니? 3. 아무런 대가나 조건 또는 의미 따위가 없이. ) 그냥 주는 거니?

나는 두 번째 그런 모양으로 줄곧, 이라는 의미로 그냥을 쓴 것 같다. 것 같다. 이 문장도 애매하다. 예전에 어떤 작가에게 것 같다, 라는 말을 쓴 학생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것 같다, 같은 애매한 말을 쓰면 안 돼요.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나는, 이라는 단어도 너무 많아요. 나는, 이라는 단어도 빼요. 나는 그냥이라는 단어보다 많이 쓰는 게 나는, 이다. 오래전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일기 쓰는 법을 알려 주었다. 일기는 내가 쓰는 거니까 나는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돼. 앞에 나는 이라는 단어를 빼세요. 거의 30년 전인데도 나는 아직도 나는 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 문장을 만들지 못한다. 찾아보니 나는 나는, 이라는 단어를 53번을 썼다.

나는 이라는 단어를 왜 이렇게 많이 써요? 그냥이요. 그냥. 확신이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분명, 모르겠다는 문장조차 애매하고 불확실하고 중심 없는 단어라 쓰면 안 되겠지만 나는, 나라고 말하지 않으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마 그 학생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의 몫을 잘해 나가고 있겠지만 나는 그 학생이 계속 마음에 쓰였다. 것 같다, 라는 말을 해도 되지 않을까. 꼭 확신이 섰을 때만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그냥, 그냥 말해보면 질문해 보면 안 되는 걸까. 그냥, 그냥. 할 수 있는데.

지인의 조언대로 퇴고하는 과정에서 그냥이라는 단어와 나는 이라는 문장을 최대한 지웠다.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 의 문장도 없어졌다. 이야기도 조금 달라졌다. 불확실한 것을 지우니 문장은 더 깔끔해졌다. 하지만 망설임과 고민이 없었더라면 만들지 못했을 문장이다.

여전히 나에게 불확실한 문장들과 단어들이 많다. 깔끔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단어를 지워야 하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더 많은 그냥과, 것 같은 생각과 나는 이라는 단어로 문장을 스케치할 것이다. 불확실한 문장을 이어 나갈 것이다. 불확실한 것들을 곱씹고 곱씹으면서 나의 확신을 찾아갈 것이다. 그렇게 불확실한 것들로 나를 긍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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