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현대병원 부원장

 
 

꼼꼼함' 도 넘치면 病 된다.

 이전 글에서 우울증을 치료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어떠한 분들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물론 사업실패, 실직, 사기, 배우자 사망 등등 누가 봐도 힘들만한 일을 겪는다면 누구라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나름 잘 견디면서 버텨나가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사소한 스트레스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에도 그 종류가 다양하겠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강박적 성격 유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강박적 성격이란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털털한 성격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은 평소 매우 꼼꼼하고, 정확하고, 완벽 주의적이고, 매사 철두철미하고, 융통성이 없고, 때로는 결벽증이 있기도 합니다. 일을 함에 있어 확인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하고,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반복해서 그 일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합니다. 자신이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그 생각을 안해야지 라는 생각 자체 때문에 힘들어질 정도가 됩니다. 이러한 강박적 성향은 적당한 수준에서는 실수 없이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게 함으로써 어느 정도까지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성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도하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매사 모든 일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통제하려고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안심을 하는 강박적인 사람에게 있어서 우리가 사는 인생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다보면 항상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은 늘 닥치게 마련입니다.

환경적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주어져 도저히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조차도 강박적인 사람은 지속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하다 보니, 점차 정신적으로 지쳐가게 되고, 몸도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만약 이런 상태가 몇 달 이상 지속되면 우리의 뇌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우울증이 발생하게 됩니다.

두뇌가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게 되니 의욕이 사라지고 매사가 귀찮아지고 뭘 해도 재미가 없어지고 움직이기도 싫고 멍해져 집중을 할 수도 없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잠도 안 오고, 머릿속으로는 온갖 원치 않는 걱정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불안과 초조가 심해져 결국에는 이렇게 괴로울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합니다. 점점 심해지면, 살아온 과거도 후회스럽고, 현재도 너무 괴로운데, 미래도 희망이 없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무척 느리게 가는 것 같아 하루가 일 년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상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정신과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주변 시선도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자신의 의지로 마음만 고쳐먹으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마음을 고쳐먹는 정도로는 턱도 없습니다.

이미 뇌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 즉, 심리적인 병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질병에 이른 상태까지 이르렀는데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고쳐먹을 수 있다면 이런 상태자체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옛날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지만, 우울증은 정신을 차릴 기회자체를 주지 않습니다. 사람이 바보가 아닌 바에야 온갖 종류의 해결책들을 생각을 안 해 봤을 리도 만무할 텐데, 계속 이렇게 저렇게 마음만 달리 먹어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더라도 결국 가능하지 않습니다. 항우울제 약을 먹어서 빨리 뇌기능자체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난 후 이런 저런 방법들(심리치료 등)을 취해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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