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희 수필가

 
 

요즘 나는 라디오 아가씨가 되었다. 동생이 라디오 아가씨, 하면 나는 스마트폰 라디오앱을 켠다. 적막한 농사일에 라디오는 재미있는 친구다. 예전에는 작은 라디오를 들고 다녔는데 산이 깊은 곳이면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 스마트폰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를 듣고 나서 나의 흥얼거림도 달라졌다. 상태상태 확 깬 상태라든가, 조강지처가 좋더라~ 라든가, 지친 나를 달래주는 ○○○안마 의자~ 등. 예전에는 라디오 광고가 싫어 음악만 듣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흥에도 자본주의가 묻었다.

라디오를 듣다 보면 나도 사연에 참여하고 싶어진다. 라디오가 시작될 때 디제이가 주제나 퀴즈, 혹은 사연에 대한 감상을 인터넷이나 문자로 보내라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항상 장갑을 끼고 일하기 때문에 사연을 보내는 게 번거롭다. 사연을 보낸다고 해도 100%로 말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질간질하지만 꾹 참는다. 그래도 치세쿠(치킨세트쿠폰)을 마구 날릴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갑을 벗고 문자를 후다닥 보내보지만 역시나, 꽝.

실망도 잠시 디제이가 읽어주는 사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좋아서 밭에 나와 일하는 게 아니다. 시키니까 한다. 그래서 아침부터 나와 일할 때면 신경이 예민해져 동생이 말을 시켜도 대꾸도 하지 않는다. 마음에 응어리 하나 만들고 억지로 일하는 동안 라디오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손이 바빠지면서 나의 귀는 점점 라디오로 향한다.

오늘은 어느 중년 가장 사연에 또래 여성분이 답장을 보내왔다. 여자분은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중년 가장에게 여러 조언을 해주셨는데 마지막에 끙끙 앓다가 죽느니 한 번 해보세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이 부싯돌처럼 내 가슴에 꽝 부딪히면서 반짝 빛났다. 그동안 생각에만 묻어놓고 표현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들이 떠올랐다. 특히 가족에게 더욱 그랬다. 그래놓고 무턱대고 억울해하고 서운했다. 반짝이는 내 마음에 훈기가 돈다.

일이 고단해지면서 책과도 멀어졌다. 대신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자주 본다. 손가락으로 톡 하고 누르면 내 초점은 스마트폰 작은 세상으로 가득 찬다. 터치 하나에 관심 영상도 쉽게 바뀐다. 유튜브 메인은 내가 자주 보는 영상의 알고리즘이다. 그래서 내 취향의 영상만 나오고 내 세상은 내 관심사로만 이루어진다. 영상을 볼수록 나는 내 안으로 계속 파고든다.

나는 한 달 전 라디오를 통해서 처음으로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들었다. 나는 뉴스를 통해서만 BTS를 접했다. 뉴스에 나오니까 유명하구나 생각했는데 라디오에서 들으니 신선했다. 처음에는 외국 가수의 노래인 줄 알았다.

내가 주로 듣는 음악은 90년대나 2000년대 가요다. 윤상, 토이, 이브 등. 나는 아직도 아이유가 신인가수 같은데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내 세상에 갇혀있는 동안 세상 가는지도 몰랐다. 라디오는 듣기만 하는데도 세상이 보인다. 지금의 시간을 알려주고 지금의 사건을 말해준다.

퀸의 ‘라디오 가가’ 떠올랐다. 1980년대 만들어진 이 노래는 당시 MTV 채널만 보는 10대들을 보며 로저 테일러가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여전히 유행에 민감하고 최신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라디오를 사랑했던 이유처럼 지금도 사람들은 우리 사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 프로가, 디제이가 그 자리에 묵묵히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어준다. 그래서 청취자들은 오래된 라디오 프로그램과 디제이를 우리 이웃처럼 생각하고 사랑한다.

내일은 라디오에서 어떤 사연과 노래가 나올지 궁금하다. 그러면 나는 또 얼마나 웃고 위로받을지, 라디오 덕분에 설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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