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준 식 전 음성교육지원청 행정과장

 
 

최근 트로트의 열풍을 타고 가수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 파티’라는 제목의 가요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무척 흥겹고 즐거운 파티에 참석한 느낌이 든다. 노래 중간 김연자가 ‘아모르파티’를 외치면 춤을 추고 즐기는 광경은 마치, 그저 젊은이들의 광기 어린 파티가 연상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인가, 경쾌한 리듬과 현란한 춤이 매력인 이 노래에 대한 작곡가가 재조명되는가 하면, 드라마도 제작되어 상영되고 있다. 아마도 이 노래를 쓴 작곡가의 의도가 가수의 고달픈 삶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원래 ‘아모르파티’는 ‘신은 죽었다’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사상으로 ‘운명에’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번역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닥치고 느끼는 고통과 어려움, 좋고 나쁜 것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운명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다가오는 필연적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개척하고 창조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니체의 사상은 그동안 신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여 자신의 운명을 신에게 의존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허무와 공허함을 준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상이 혼돈된 상황에서 신에 대한 의존 사상과 현실에 대한 운명론이 동시에 존재하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현대인들은 이 공허함과 현실의 불안을 해소해 보고자 쾌락에 빠지기도 하고 황금을 좇아 사방으로 헤맨다. 삶에 대한 정도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열심히 나가면서도 자신의 야망이나 삶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벌어서 절에 시주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 정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마음이 편해지고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것이 삶의 과정이다. 인간의 욕망에 대한 적절한 인내와 부정하더라도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운명적 사랑’하면 ‘운명적인 만남’을 연상하게 된다. 삶 자체가 만남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흔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우연히 여러 번 겹쳐서 운명적으로 만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그래서 사랑에 빠지는 관계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바꿀 수 없는 만남이 있다. 부모나 형제, 자녀와 같은 운명적인 관계가 있다.

요즘 세상에는 이를 소홀히 하여 말 못 하는 어린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마음가짐도 가지지 못하는 처사들이 많다. 내게 주어진 운명적 만남에 대한 사랑부터 실천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가수 김연자가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최선을 다해서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을 한 것처럼, 진정한 ‘아모르파티’는 자신의 살아가는 환경이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은 결코 비굴하거나 안일한 처사가 아니다. 결코, 체념하고 삶의 현실에 굴복한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나 적극적인 개척과 전환을 모색한다면 긍정적인 삶이 영위되리라 믿는다.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면 멋진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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