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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기사승인 2021.01.05  15: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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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설희 수필가

   
 

어느 날 앞산에 빨간 컨테이너 건물이 보였다. 엄마와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우리는 그쪽이 도로 공사 중이니 건설사에서 사용하는 컨테이너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밤이면 빨간 십자가 모양이 반짝거렸다. 교회가 새로 생긴 것일까. 며칠 궁금해하던 엄마와 나는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는 산책을 가장하며(하지만 실제로 산책인) 빨간 컨테이너 방향으로 걸었다. 도착하니 요양원이었다. 그곳에는 빨간 컨테이너 이외도 여러 컨테이너가 있었다. 요양원 어르신들은 볕을 쬐기 위해 마당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엄마와 나는 사실을 알고 시시해졌지만 속은 후련했다. 그리고 우리는 말할 수 있었다. 저 건물은 요양원이야.

이 모험(?)으로 엄마는 용기를 얻었는지 이번에는 마을 오대산 비밀을 풀고 싶어 했다. 마을 오대산 정상에는 큰 정자가 있다. 하지만 소문일 뿐, 실제 정자를 본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자 이야기를 해준 사람도 다른 사람한테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우리는 오대산이 마을 제일 높은 산이라는 것만 알았지 정보는 거의 없었다. 엄마와 나는 무작정 앞으로 걸었다. 하지만 첫날은 실패였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졌고 염소 밥을 줘야 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에 염소 밥을 주고 출발했다. 다행히 산 중턱에서 동네 사람을 만나 길을 물었다. 그냥 앞으로 쭈욱 가라고 했다. 정말 정상엔 정자가 있나요? 물으니 가보면 안다고 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물으니 금방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냥 쭈욱 가라는 말과 금방이라는 말을 의지 삼아 앞으로 걸었다. 힘들었지만 새삼스러웠다. 앞으로 가면 앞으로 가진다. 우리는 30분 이상을 걸었지만, 정상 기미는 없었다. 다행히 나무 중간중간 오대산산악회라고 적혀있는 등산리본를 보며 제대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정산은 보이지 않았고 산은 가팔랐다. 엄마와 나는 엉금엉금 오르며 앞으로 갔다. 오르다 보니 평지 같은 보였다. 먼저 도착한 엄마는 그곳에 오르자 뭐야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엄마 목소리에 마지막 힘을 내며 올라갔다. 정산 평지에는 큰 평상이 있었다. 소문으로 듣던 정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길을 잘못 온 게 아닐까 의심했는데 평상 앞쪽에 표지석이 보였다. 오대산정산 397m. 우리는 빨간 컨테이너처럼 시시하다고 생각하며 평상에 앉아 가져온 맥주를 마셨다. 맥주는 시원했다. 이곳에 오르며 포기하고 싶은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걸으면 비밀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포기할 수 없었다.

꿈을 포기 못한 나는 또래보다 많이 늦었다. 아까운 청춘을 집안에서만 보냈고 아직도 부모님께 의탁하며 산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재작년 겨울, 겨우 등단 딱지 하나 건졌지만 삶은 등단 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모든 하루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상만 바라보면 그곳은 굉장히 높아 보여 내가 갈 수 없는 곳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걷다 보면 그곳에 간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산에서 내려와 동네 사람을 만났다. 산책이냐는 말에 엄마는 오대산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정자는 없고 평상만 있더라고요. 나는 그 말이 승리자의 말투 같아 웃음이 나왔다. 가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음성신문(주) esb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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