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순 수필가

 
 

아마 그때도 이맘때였지 싶다. 내가 터키로 여행을 갔던 때가. 요즘은 모든 나라가 빗장을 걸어 잠근 탓에 해외여행을 할 수 없으니 이때쯤 떠났던 여행이 새삼 아삼아삼하니 떠오른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나도 그때의 추억을 되작여 본다.

멀리서 보면 하얀 목화솜으로 만든 성처럼 보여 ‘목화의 성’이라는 뜻의 파묵깔레는 신비로운 곳이었다. 그 모양은 마치 우리네 다락논을 닮아 있었다. 그곳의 온천수는 치유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온천의 성지로 추앙받아 왔다. 그래서 인지 그 옛날 로마황제와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찾던 곳이기도 했다고 한다.

온천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여름이면 이웃의 유럽 국가들에서 그곳 터키로 휴양을 많이 온다고 한다.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과 수영복 바지만을 걸친 이방인 남자들이 활보를 하고 다닌다. 그에 비해 우리 일행들의 옷차림은 그곳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한국 사람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띈다. 그것은 태양을 이기기 위해 중무장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숙소에서 또는 버스 안에서 시간만 나면 노출되는 부위마다에 썬크림을 듬뿍 발랐다. 그 뿐이 아니다.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로 팔에는 토시로 태양을 차단시킨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양산 까지 써야만 안심이 된다. 그래서 일까. 우리가 지나갈 때면 다른 여행객들의 시선이 모아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우리나라 사람인지 아닌지는 옷차림만 보아도 단박에 알 수 있다. 비슷비슷한 옷차림에서 한민족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뽀얀 발만을 노출시킨 채 온천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비키니가, 늘씬한 몸매를 지닌 여인의 전유물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에서는 풍만한 몸매의 흑인 여성도 백인 여성도 당당히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처음에는 왠지 민망하고 쑥스러워 어디를 보아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발을 담그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나는 수영복을 입은 멋진 파란 눈의 남정네와 팔짱을 끼고 사진도 찍었다. 그곳에서는 우리도 어차피 이방인이다. 분명 우리는 다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같음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된다. 눈빛으로 얼굴 표정으로 모든 이야기는 술술 통하고 만다. 이런 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파묵깔레 온천수 덕분인지 아니면 이방인과의 어울림 때문인지 여행의 피로도 잊은 채 다음 장소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길섶으로 제주도에서 보았음직한 돌담들이 널려 있다. 그리고 이방인들을 배웅하듯 저 멀리에서는 히에라폴리스가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이곳으로 병을 치유 하러 왔다가 숨진 사람들의 묘가 많다고 했다. 그곳 어디쯤에 있다는 묘비명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라’

이제는 아슴한 터키의 모습들이다. 드넓은 목화밭의 여인들과, 울안에서 우두망찰 서 있던 슬픈 눈의 여인들, 삼삼오오 모여 차와 술을 마시던 남자들의 유쾌한 모습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은 다 그립기만하다. 언제쯤이면 다시 세계의 빗장이 풀려 서로 오갈 수 있을까. 물론 이제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고들 한다. 그래도 우리 너무 낙담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바람이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다보면 우리 다시 옛이야기하며 웃을 날이 있을 것이다. 거친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작은 들풀처럼 우리 서로를 보듬으며 잘 견뎌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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